한국 가곡의 거장, 백남 김연준
백남 김연준(1914-2008)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언론인, 음악 교육자로, 한국 가곡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한양대학교의 설립과 교육자 김연준
191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당시 유명했던 현제명이 있는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1939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그해 기술보국(技術保國)을 위해 한양대학교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하였다.
1944년 일제 탄압으로 학교 문을 닫았지만 광복 후 한양공과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에는 한양대학교 음대를 추가하여 종합대학인 현재의 한양대학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한양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2007년까지 한양대학교 법인인 한양학원의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다방면에서 활동한 공헌자
그는 대한체육연맹 회장,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회장,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또 대한일보와 기독교신문을 창간하여 언론 분야에서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대한일보는 박정희 정권 시절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로 인해 강제 폐간되었다.
김연준 선생은 '수재의연금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증거 부족에도 불구하고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1년 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며, 당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연준에게 "폐간까지는 안 해도 됐는데 일이 묘하게 됐다"고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음악가로서의 삶과 업적
김연준 선생은 음악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37년 국내 최초의 바리톤 독주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다수의 가곡을 작곡하고 24차례의 작곡 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 가곡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대표작 '청산에 살리라'
그의 대표적인 가곡으로는 '청산에 살리라'와 '비가' 등이 있다.
특히 '청산에 살리라'는 1973년에 옥중에서 작사·작곡된 작품으로, 세상의 번뇌와 시름을 잊고 청산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곡은 한국 가곡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그 외에 1500여 곡에 달하는 가곡을 남겼다.
유산과 저서
그의 저서로는 『백남문집』, 『사랑의 실천』 등이 있으며, 작곡집으로 『김연준 가곡 1,500곡집』, 『성가곡집』 등이 있다.
김연준 선생은 교육자, 작곡가로서 대한민국 음악과 교육 그리고 문화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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