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가곡 《Prometheus》(D.674)는 독일 문학과 낭만주의 음악이 만나는 가장 극적인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이 곡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인간의 자아 선언이자, 신에 대한 도전장을 내미는 불꽃 같은 예술이다.
본 글에서는 가곡의 배경이 된 신화 속 인물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괴테의 시가 가진 문학적 의미, 그리고 슈베르트의 음악이 이 시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상세히 살펴본다.
원문 전체 가사와 함께 한국어 번역도 함께 소개한다.
불을 훔친 신, 프로메테우스란 누구인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티탄족의 신으로, 인간을 창조한 존재이자 문명의 불씨를 전해준 반역자다.
그는 제우스가 인간에게 금지한 불을 몰래 훔쳐 인간에게 나눠주고, 그 대가로 카프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영원히 받는다.
간은 매일 밤 회복되고, 이 고통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한 희생과 신에 대한 반역이 그의 정체성이며, 그는 그 상징으로 문학과 예술 속에서 ‘자유로운 인간정신’을 대표하는 존재로 기억된다.
괴테는 이 신화를 바탕으로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계몽주의적 선언을 시로 옮겼고, 슈베르트는 여기에 음악을 부여했다.
괴테의 시, 그리고 인간 중심의 선언
괴테의 시 「Prometheus」는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시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 괴테는 신의 권위보다 인간의 주체성과 감정을 강조하며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시의 화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향해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인간을 빚어내는 창조자의 위치에 선다.
그는 고통과 눈물, 기쁨과 환희를 모두 포용하는 인간을 ‘나와 같은 존재’로 만들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자임을 외친다. 이 시는 인간의 존엄과 이성을 극대화하며, 신조차도 도전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재정의한다.
슈베르트의 음악: 가곡을 넘어선 드라마
슈베르트는 이 시를 단순한 선율로 처리하지 않았다.
《Prometheus》는 극적이고 낭만적인 전개, 불협화음과 강렬한 리듬을 통해 시의 분노와 열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인 리트(Lied)의 부드러운 멜로디에서 벗어나, 마치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낭송적이며 연극적인 형태를 띤다.
음악은 조용한 조롱에서 분노의 폭발로, 다시 창조자의 목소리로 이어지며 프로메테우스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 “Wie ich! (나처럼!)”의 절규는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이자, 인간 선언의 절정이다.
원문 가사와 한국어 번역
다음은 괴테의 독일어 원문과 그 전체 번역이다. 시의 격정적인 어조와 사상적 깊이를 함께 음미해보자.
📜 독일어 원문 (Johann Wolfgang von Goethe – Prometheus)
Bedecke deinen Himmel, Zeus,
Mit Wolkendunst,
Und übe, dem Knaben gleich,
Der Disteln köpft,
An Eichen dich und Bergeshöhn –
Mußt mir meine Erde
Doch lassen stehn,
Und meine Hütte, die du nicht gebaut,
Und meinen Herd,
Um dessen Glut
Du mich beneidest.
Ich kenne nichts Ärmeres
Unter der Sonn als euch, Götter!
Ihr nähret kümmerlich
Von Opfersteuern
Und Gebetshauch
Eure Majestät,
Und darbtet, wären
Nicht Kinder und Bettler
Hoffnungsvolle Toren.
Da ich ein Kind war,
Nicht wußte, wo aus, wo ein,
Kehrt’ ich mein verirrtes Auge
Zur Sonne, als wenn drüber wär
Ein Ohr zu hören meine Klage,
Ein Herz wie mein’s,
Sich des Bedrängten zu erbarmen.
Wer half mir
Wider der Titanen Übermut?
Wer rettete vom Tode mich,
Von Sklaverei?
Hast du’s nicht alles selbst vollendet,
Heilig glühend Herz?
Und glühtest, jung und gut,
Betrogen, Rettungsdank
Dem Schlafenden da droben?
Ich dich ehren? Wofür?
Hast du die Schmerzen gelindert
Je des Beladenen?
Hast du die Tränen gestillet
Je des Geängsteten?
Hat nicht mich zum Manne geschmiedet
Die allmächtige Zeit
Und das ewige Schicksal,
Meine Herren und deine?
Wähntest du etwa,
Ich sollte das Leben hassen,
In Wüsten fliehen,
Weil nicht alle
Blütenträume reiften?
Hier sitz’ ich, forme Menschen
Nach meinem Bilde,
Ein Geschlecht, das mir gleich sei,
Zu leiden, zu weinen,
Zu genießen und zu freuen sich,
Und dein nicht zu achten,
Wie ich!
🇰🇷 전체 한국어 번역
하늘을 덮어라, 제우스여,
구름의 안개로.
그리고 어린애처럼 즐겨라,
엉겅퀴나 베어내며
오크나무나 산마루에서 힘을 써봐라.
하지만 내 땅은
나에게 남겨두어야지.
네가 지은 적 없는 내 오두막과
내 화덕,
그 불꽃을
네가 시기하고 있지 않은가.
태양 아래 너희보다 더 가난한 존재는
난 모르겠다, 신들이여!
너희는 겨우
제물의 연기와
기도의 숨결로
너희 위엄을 유지하고,
아이들과 거지들이
헛된 희망으로
너희를 섬기고 있다.
어릴 적,
무엇이 뭔지도 몰랐을 때,
나는 방황하는 눈을
태양을 향해 돌렸지. 마치 그 위에
내 슬픔을 들을 귀가 있고
내 고통을 느낄
마음이 있으리라 믿고서.
하지만 누가 나를 도왔지?
거인족의 오만으로부터?
누가 나를 죽음에서,
속박에서 구했는가?
모두 네가 아니라
이 뜨겁게 타오르는
내 마음이 해낸 일이 아니던가?
그 불타는 젊음과 선의로,
잠든 자 위에
헛된 감사의 마음을 돌렸던 것뿐.
내가 너를 공경해야 한다고? 왜?
네가 짐진 자의 고통을
덜어준 적이 있었던가?
불안에 떨던 이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는가?
나를 남자로 만든 것은
전능한 시간과
영원한 운명이었다.
그것들이 내 주인이고, 너의 주인이기도 하지.
내가 삶을 미워해야 했을까?
사막으로 도망쳐야 했을까?
모든 꿈이 꽃피지 않았다고 해서?
여기 나는 앉아
인간을 내 모습대로 만든다.
나와 같은 종족을.
고통받고, 울고,
즐기고, 기뻐하며,
너 따위는
존중하지 않을 존재들을.
바로 나처럼!
가곡을 넘어선 인간 정신의 선언
《Prometheus》는 단순한 가곡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능성과 자율성에 대한 선언이자, 신화적 상징을 통해 표현된 ‘현대적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노래다.
괴테는 문학으로, 슈베르트는 음악으로 이 선언을 완성했다.
이 가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천둥 소리와 함께 등장한 인간 프로메테우스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마지막 한마디를 떠올리게 된다.
“Wie ich!” –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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